이성적이다. 감성적이다. 합리적이다.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합리적이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합리적인 판단과 언변을 만들어 낼까?


합리적 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또는 그런 것.'을 말한다.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하다.

이게 사실 상당히 모호한 말이다.


이론 :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일반화한 명제체계.

이치 :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비슷한 말] 염도1().


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잘 보면 이론의 정의에는 '논리적', '일반화'라는 말이 쓰였고, 이치의 정의에서는 '정당한', '조리', '도리'라는 말이 쓰였다. 이 말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 정의 되는 것일까?

과연 이런 애매한 말들에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위의 말은 사실 흔히 말하는 과학, 즉 사물에 국한 되어 그 현상에 대한 것일 경우,에는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어떻게 될까? 사람 사이의 일은 흔히 말하는 과학과 다른 것이고, 모든 일의 인과 관계를 하나하나 밝힐 수 없을텐데 말이다.


사람들이 조그마한 무리를 지어 생활하던 방식이 점차 무리가 모여서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되면서, 작은 무리로 살 던 때와 달리 문제가 생겼다. 모든 사람은 똑같지 않다. 이 차이들이 모여 갈등이 생기고, 균열이 생긴다. 이 갈등을 조절을 할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그 필요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법과 도덕이라고 본다. 

법과 도덕의 근본적인 차이는 강제성의 여부이다. 법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적어도 이건 좀 지키자. 물론 법이나 도덕이나 사실의 사회적인 합의이다. 누가 정했는진 몰라도 먼 옛날부터 하나씩 하나씩 서로 이런 것 정돈 지켜줍시다라고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결정적 차이는 위에 말했듯, 법과 같은 경우에 이 선을 넘으면 서로에게 위해를 끼치는 정도가 너무 크기에 '이건 좀 지켜줍시다. 읭?'하면서 강제성을 부여해 놓은 놈이다. 다만, 도덕의 경우는 조금 문제가 달라진다. 특히나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고, 과거의 문화, 예절, 전통, 혹은 관습 등이 현재의 빠른 문명과 세계 다양한 곳(다른 곳은 이 곳과 법, 도덕, 예절 등이 다를 수 있다)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전파되어 들어오면서 서로 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각기 어떠한 삶을 살아오고, 어떠한 가치관을 적립했느냐에 따라, 한 사물을 보는데에 이견이 발생을 하며, 여기서 서로 간에 지켜야할 도덕적 범위와 예절의 범위가 달라지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우리는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며, 합리적인 이야기를 한 사람의 대화를 더욱 신뢰하게 되는데,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것 또한 위의 법과 도덕의 이야기 처럼, 과학과는 다른 사람 사이의 일이기 때문에, 그 기반으로 가지게 되는 합리적이라는 것의 기준(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이 합리적임을 정의하는 이론이나 이치도 사람의 일이고, 이것은 사실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서로 간에 다르고 모호해 질 수 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혹은 '나이 먹고 나면 또 다르게 보일 거다'라는 말들.

우리가 어느 한 문제에 대한 관점 차이를 보이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나이가 적어도 한 두살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거창한 듯 내뱉는 저 말이 사실은 문제의 핵심일 수도 있다.


어린 아이의 세계관(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은 그 어린 아이보다 1, 2살 더 먹은 어린 아이의 세계관과 같을 수 없다(물론 일반적으로... 개인마다 개인차가 있을 순 있겠지만). 무슨 말인고 하면, 밥 한 끼 더먹은게 벼슬인양 말하는 거 같지만, 그 밥 한끼 먹는 사이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의 차이가 발생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경험의 차이는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물론 위에 언급한 내용이 나이가 많인 들은 사람이 합리적이고, 그들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냥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이 점은 감안을 하라는 말일 뿐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게 특기이지만, 이젠 좀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즉,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가장 큰 목적은 대다수에 의해 정해진 사회적 관습에 가장 그럴듯하게 걸맞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니가 들어도, 내가 들어도, 또는 그 어느 누가 들었을 때 많은 수의 사람이 공감을 할 수 있다면 맞는 이야기라는 것.

위에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경험이 많다고 무조건 바른 판단을 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의 정도이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통한 섣부른 일반화와 성급한 자기 판단은 오히려 한 생각에만 매몰되게 만들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합리적이란 부분에 대해, 누군가는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란 부분은 쉽게 말해, 유동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다. 위에 내가 쭈욱 쓸 데 없이 길게 쓴 내용을 가만히 보면 알겠지만, 글 전반에 당신들이 절대적이라고 무의식으로 생각한 대부분은 우리끼리 혹은 니들끼리의 사회적 합의이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놈들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이해함에도 그러해야 한다.

아 물론 가끔 사회적 인식, 합의, 통념, 혹은 이에 준하는 가치들에 대해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는데, 뭐 이 분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ㅅ-;

'생각의 소산 > lately thin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백질, 도대체 이건 뭐니 ? 헐  (0) 2015.07.19
I never dreamed of my dream. I was made. satisfied.  (0) 2015.07.01
의료와 자본주의  (0) 2012.07.02
논리?  (0) 2011.09.01
과학?? 논리???  (0) 2011.08.31
AND